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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큰집에 007 전집이 있었다. 당시에는 007이라고 하면 스파이계의 전설이자 영웅으로서 무조건적 추종의 대상이었으므로 그 두꺼운 전집을 순식간에 읽었었다. 007 전집의 첫 작품은 카지노 로얄이었는데, 당시 번역 제목은 카지노 르와얄이라고 돼 있었다. 나는 로얄 외에 르와얄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는 줄 알았었는데 나중에 영어를 배우고 나서 보니 카지노 로얄의 원제목 역시 로얄로 발음되어야 할 Royale이었다. 이게 왜 르와얄로 번역됐던 걸까 궁금해 했었는데, 배틀 로얄을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일본인들은 royale을 ロワイアル, 즉 로와이아루라고 번역했는데 이걸 중역하면서 르와얄이 됐던 것이다.
하여간, 극장 개봉 당시 못봤던 카지노 로얄을 dvd로 봤다. 보고 나니 극장에서 못본 게 조금 아까웠다. 1. 온갖 혹평들이 있었지만 카지노 로얄은 007의 본래 모습에 충실한 영화인 듯 하다. 이언 플레밍이 처음 창조해서 소설에서 선보였던 제임스 본드는 이후 숀 코네리나 로져 무어가 만들어낸 모습보다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표현한 모습에 가깝다. 코네리나 무어의 여유만만하고 모든 사태에 준비가 다 돼 있는 본드의 모습은 제임스 본드라기보다는 오히려 일본 만화 루팡3세가 그 전형의 극단을 보여줬다. 까맣게 잊고 있던 소설 줄거리가 영화를 보면서 되살아났는데, 앞부분은 아니지만 중간 이후의 스토리는 거의 원작에 가깝다. 특히, 마지막에 르 시프르에게 납치됐던 본드의 구출 시퀀스는 원작과 똑같다. 코네리나 무어 본드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각본이지만 말이다. (그들이라면 Q의 가제트를 이용해 탈출했겠지.) 2. 다니엘 크레이그는 영국인이라기보다는 러시아인 비슷한 인상이다. 처음 캐스팅됐을 때는 잘 안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화면에서 보니 잘 어울리는 본드다. 피지컬한 본드. 3. 첫장면에서 한참 동안 펼쳐지는 야마카시는, 나처럼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저 장면을 극장에서 봤으면 상당히 심신에 무리가 갔을 것 같다. 4. 본드걸 두사람은 모두 외모가 많이 부족했다. 뭔가 고친 듯한 전형적 얼굴, 매력은 별로 찾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5. 르 시프르가 본드를 납치할 때 베스퍼를 미끼로 사용하는 장면은 논리적으로 좀 무리가 큰 듯. 만약 걔가 죽으면 계좌번호를 알 수 없는데 어떻게 돈을 인출하려고? 소설에서는 어땠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6. 카지노에서 진행된 게임은 홀덤이었는데 소설이 번역될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홀덤을 아는 사람이 있었을 리가 없다. 이걸 어떤 식으로 처리했었을지 역시 기억이 잘 안난다. 그 당시에는 세븐카드도 아닌 파이브카드 스터드 정도밖에 안알려졌을 때니 파이브카드로 번역했을 것 같기는 한데... 7. 다음 크레이그 본드의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겠다. 8. 미친 척 하고 자막도 없이 봤더니 스토리만 대충 짐작 갈 뿐 뭔소리를 했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웬 액션 영화에서 이런 어려운 문장을 구사한단 말이냐.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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