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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빌 머레이를 좋아한다. 빌을 SNL에서 본 기억은 없다. 내가 AFKN을 통해 SNL을 보기 시작했을 때 빌은 이미 시리즈를 떠난 상태였다. 그를 처음 본 건 당연히 고스트 버스터(이 영화를 찍을 때 고작 서른 네살이었다.), 필모그래피에 의하면 툿시에서도 봤어야 했지만 그 영화에서는 더스틴 호프먼 외에는 제시카 랭이나 지나 데이비스도 기억이 안나니 빌 머레이가 기억날리가 없다. 그 외에도 고스트 버스터 2나 밥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What about Bob?) 같은 영화들을 봤지만 그다지 호감이 가는 배우는 아니었다. 살살 요령이나 피우는 얄밉고 짜증나는 캐릭터였으니까.
빌 머레이를 좋아하게 된 건 역시 누구나 그랬듯이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이었다. 이 영화는 정말 재미있게 봐서 빌 머레이는 물론이고 심지어 앤디 맥다월조차 좋아하게 됐으니까. 브로큰 플라워를 본 것 역시 빌 머레이 때문이었다. 빌 머레이가 아니라면 이런 영화를 챙겨서 봤을 리가 없다. 사실 나는 빌 머레이 영화 중에서도 코미디만 좋아한다. Lost in Translation은 왠지 안끌려서 보지 않았다. 사랑의 블랙홀을 제외하고 내가 제일 재미있게 본 빌 머레이의 영화는 아마도 국내에 나를 제외하고는 본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The man who knew too little(혹시 비디오 출시가 됐나?)이다. 이 영화는 처음 개봉 예고할 때부터 너무 기대가 돼서 개봉하자마자 극장에 달려가 봤었는데 국내에서는 개봉조차 안된 걸로 알고 있다. 사실 브로큰 플라워는 시놉시스가 Lost in Translation 풍이어서 내가 그다지 보고 싶어할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Lost in Translation와 달리 이 영화는 왠지 끌렸다. 심지어 감독이 짐 자무쉬였는데도 말이다. 영화를 본 소감은 간략하게 줄일 수 있다. 맨 마지막의 5분(혹은 10분)을 제외하고는 참 좋았다. 전반적으로 나른하고 느긋하게 흘러가는, 빌 머레이가 아니면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인생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없이 멍청하게 시간을 죽여나가는 이완된 영상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적절하게 지루하고, 적절하게 나른했다. 영화에 미스터리와 긴장을 주고 싶어했던 마지막 5분만 없었으면 말이다. 그냥 빌이 집에 돌아와 카우치에 눕는 장면에서 끝내 버렸으면 좋았을 걸 싶다. 관객들로부터는 욕을 먹었겠지만, 그렇게 끝내는 게 좀 더 예술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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